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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원을 받는 순간에 의롭게 여겨지고 의롭다는 선언을 받게 됩니다. 칭의는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칭의의 원리는 성경 전반에 걸쳐 발견되지만 이를 잘 설명하고 있는 구절은 로마서 3:21~26절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 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삶을 주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칭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성도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칭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사실 칭의는 주의 재림 때 있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석에서 얻게 될 것의 선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의 '칭의'의 완성은 예수의 재림 때까지 유보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통적 개신교가 그랬듯이 한국교회도 칭의론의 관계론적 의미를 간과하고 그것의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일부 교회는 일방적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무죄 선언 받고 의인이라 칭함 받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만 강조하여 칭의론을 아주 단순화시켜 예정론과 성도의 견인론을 뒷받침하는 도구로서 활용해 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가르침을 더 단순화하여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하여 나의 구원은 확실히 보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러니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즉 왜곡된 이해를 가지고 윤리 없는 구원론을 설파하는 많은 한국의 목사들은 사실상 그들이 이단이라고 규정한 구원파의 구원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칭의'는 간단히 말하면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칭의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 '의' 가 전가된 것을 근거로 하여 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고후 5:21)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칭의로서 한 번 구원받았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진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완성은 예수께서 재림하는 그날까지 유보된 개념으로 우리는 코람 데오의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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